22 Desember 2011

개, 개, 개 / 안희환




저는 개를 참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개를 키웠었고 함께 어울려 놀았었기에 지금도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개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째로 집의 구조상 개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3층에 있는데 개를 묶어둘만한 공간이 전혀 없습니다. 마당이나 뜰이 있어야 개를 키울 수 있을 텐데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내 때문입니다. 아내는 개를 싫어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개를 무서워합니다. 같이 길을 가다가 개가 서 있는 것을 보면 제 뒤로 숨습니다. 질색을 합니다. 큰 개를 보고 그런다면 이해라도 되겠지만 조그만 강아지를 보고도 그처럼 무서워하니 개를 키우자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개를 키워보자고 살짝 말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내가 그렇게 개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일 때 개로 인한 상처가 깊었던 것입니다. 개를 키우는 집에서 단속을 잘못 했는지 개 우리의 문을 열어두었는데 집단으로 몰려나온 개들이 아직 어린아이였던 아내를 둘러싸고 짖어댔던 것입니다. 개들 수십 마리로 둘러싸인 상태라면 장정이라도 무서워할 상황인데 어린아이가 그런 일을 경험했으니 끔찍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더더욱 개를 키우자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개를 좋아하면서도 키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저는 다른 개를 보면 반가워합니다.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물론 그나마도 아내의 제지를 받아야 합니다. 개를 만지면 손에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애처가(?)인 저는 아내에게 맞춰주기 위해 아내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살짝 개를 만지고 만지지 않은 첫 시침을 뗍니다. 그것도 제법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에 군산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키우고 있던 개가 있습니다. 누런색의 큰 개인데 그 개와 친해졌습니다. 이름을 몰라 “멍멍아”하고 불렀는데 자꾸 불렀더니 나중엔 자기 이름인줄 알고 꼬리를 흔듭니다. 후에 알고 보니 이름이 “영양”이었는데 영양탕 집에서 데리고 왓다고 해서 “영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름을 알고 나서도 그냥 “멍멍아”하고 불렀습니다. “영양”이라는 이름이 기분 나쁠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와 친해진 “멍멍”이는 저를 따라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멍멍이는 끈을 묶어서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잘 따라다녔는데 앞서 달려가다가도 갈래 길이 앞에 놓여있을 때는 멈춰서 기다릴 만큼 영특했습니다. 아무래도 무늬만 똥개이지 실상은 족보 있는 개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서면 서고, 가면 가고, 방향을 바꾸면 자기도 바꾸면서 따라다니는 멍멍이 때문에 산책이 재미있었습니다.

한번은 멍멍이가 길가의 낙엽(짚단도 있고) 더미에 코를 묻고 킁킁거렸습니다. 이리저리 코를 움직여가며 낙엽더미를 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여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조그만 물체를 낚아채고 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물건을 내려놓더니 발로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가 보았더니 작은 쥐 한 마리를 잡아서 그것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쥐는 도망가려다가 잡히고 도망가려다가 잡히곤 했는데 새끼라서 그랬는지 멍멍이가 동작이 빨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곧 맥을 잃고 말았습니다.

멍멍이는 쥐가 움직이지 않자 흥미를 잃었는데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아무튼 멍멍이가 쥐를 입으로 무는 것을 보았던 저는 개가 제 손을 핥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멍이는 제 뒤를 따라 함께 산책을 했는데 맑은 공기 속에서 한참을 걸었더니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멍멍이의 주인께서 원하면 멍멍이를 가져도 된다고 하셨지만 눈물을 머금고 거절해야만 했습니다. 데리고 갔다가는 개가 사라질 때까지 아내의 구박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멍멍이와 안타까운 작별을 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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